암리차르-아그라-기차속의 인도인들

 

인도에 대하여는 수 많은 말들을 들었으며 이미 다들 알고 계시리라.

 

 

 

세상의 모든 곳에서 중 그곳의 문화와 사는 것을 볼 때는

기차를 타야하고 기차 중에서도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칸을 따야 한다.

 

 

 

하지만 이번 인도 여행에서는 도저히 로컬 칸을 타지 않았는데

처음 인도 여행이며안전을 위해서다

 

 

 

중국과 맞닿는 산악도시 레 라다크조드뿌르 같은 사막도시맥간도 가고 싶질 않았다

설산은 훈자서도 보았으며 네팔로 들어가 또 볼것이고,

사막은 나미비아의 오렌지 사막의 희열 이상을 보지 못 할것 같기에.

 

 

 

라호서 부터 느끼기 시작한 더위개들의 길거리 활보빵 빵 울어데는 략샤자동차 소음들은

귀를 멍하게 했고 길거리에 마주치는 거지들은 

 

'도데체 이나라의 복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흰두교의 계급제도에 불만을 나타냈고 하 루빨리인도를 벗어 나고 싶었다

 

미얀마 만달레리 -씨뽀 기차도 외국인들 전용 칸이 있지만

(현지인 들 칸 차도 외국인 요금 내야 함자유가 구속 된 듯하여 현지인 칸으로 간다.

이곳은 코메디다한국서 왔다는 나를 향해 처다보느라 목들이 뒤틀렸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 드라마로 

'엄마아빠언니오빠'등등 말을 하면서 친절을 보여 준는데 시간은 금방 흘러 간다

잊지 못하는것은 어느 역에서 리어카 정도의 땔감(가로둥근 나무 토막)

을 부부가 실는 것이였고 한참을 가더니 내렸다

 

 

 

스리랑카 캔디-하푸탈레현지인 칸 이곳도 위와 마찬가지입니다.

끝 없이 펼쳐지는 녹차 밭현지인들과의 풋 풋한 대화.

 

 

 

중국의 기차는 마음 놓고 잠자도 된다.

차장이 30분전에 깨워 준다

중국은 교통대학이 있으니 중국의 철도 운행은 아시아 중에서는 모범 사례.

 

인도의 철도는 인도 사람들이 이동 수단에 단 연코 필요 한 것이니 만큼 모든 사람들이 탄다.

 

 

 

어쩌다 혼자 여행하는 , 

처음으로 인도 여행하는 나로서는 무서움두려움에 떨어야 했지만 

당당하게 암리차르 - 아그라 기차에 올랐다

 

 

표 보시고 궁금증 있으시면 쪽지 주세요

 

 

 

기차표는 인도라는 이미지에 맞게 복잡하게 얽히어져 잘 알 수 없었기에 

누군가를 붙잡고

 

이 기차가 맞나

 

이 칸이 맞나

물어 보아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인도 사람들 모두 거짓말쟁이로 보이고

어째 어째 물어 물어 칸에 타고 보니 안도의 한숨에 맞은편에는 한 식구가 있었다.

 

 

 

기차역에서 그나마 안전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 나름이 판단이지만 

가족 무리에 합류 하는 것이다.

 

 

 

기차 기다릴 때도 아이가 두서넛 딸린 식구들 옆에

 엉거주춤 신문지나 그냥 바닥에 자리 잡는다.

 

 

연착이 잦은 인도 기차역 언제 올지 모르니까 

마냥 기달려야 한다. 

 

 

 

오전 8 30분에 출발오후 00:40 분 아그라 도착

연착으로 다음날 새벽 2시에 도착 하였다

 

 

 

오밤중이지만 역에는 자리 깔고 누워 있는 사람들

서성이는 사람들,

다행히 거지들은 보이질 않았고 정신 바짝 차려 일단 경찰들 있은 곳으로.

 

 

 

숙소 사진을 보여 주면서 간다 하니 친절히 오토 릭샤를 잡아 주었다.

 

 

 

일단 반은 성공숙소로 향하는 기사는 친절 하였으며 

 시간 문 앞에의 문지기는 그냥 길바닥에 잠자다가 안 쪽 문을 두들겨 직원을 불러 주었다

 

 

 

인도 사람들이라고 다 도둑놈 사기꾼은 아니다

하지만 늘 조심조심 또 조심 하여야 한다.

 

 

 

아그라 바라나시 행 기차

 

 

 

운이 좋았는지 내 맞은 편 식구는 4살 된 남자아이젊은 남편마누라 이렇게 한 식구였다,

 

젊은 아빠는 깔끔한 흰색의 윗도리와 앞줄이 선명한 바지에 

수염도 싹 밀어 버렸으며 부인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상당히 세련  되었고

인도 대중에서 보기 드문 깨끗하고 아들은 귀여 웠다.

 

 

인도인 가족 

 

 

 

자연히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 탭에 있던 와가보더를 보여 주면서 파키스탄을 칭찬하였다.

 

 

 

이건 나의 큰 실 수였다.

인도인의 자존심을 건들인 것이다.

 

 

 

그 말 하고 난 다음부터 그는 

그의 헨 폰으로 인도파키스탄 자료를 보여 주는데 파키스탄이 인도에 못 된 짓 한 것

 

 

 

국토의 넓이가 인도 보다 저렇게 작다

방글라데시도 줬더니 어디다 팔아먹은 나쁜 파키스탄

무슬람 이 무슨 종교냐

지금도 텔레반 돕고 있는 나쁜넘들.. 계속 말했다.

 

에그……이런 주책바가지... 그럼 그렇지 인도가 더 굿이야

베리벨리 아주 굿 인도 굿 굿!~~~간신히 달래 주었다.

 

 

 

키큰 여자가 구걸을 하는데 목의 복숭아 뼈가 툭 튀어 나온 걸로 보아 분명 여장 남자 였다.

치렁 치렁한 긴 머리메니큐어 칠한 손발톱

요란스런 악세사리를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두 하였고 

옷 차림은 현기증을 일으키게 색깔이 찬란하였다

 

 

 

우리칸에 서더니 무슨 기도 같은 주문을 외우더니 돈 달란다.

앞 자리의 인도가족 아빠는 얼른 돈을 주었다.

 

 

 

 

그들은 아그라에서 출발하여 3시간 정도에서 내렸는데 

그들이 내리고 난 후 앞 윗자리 텅 비어큰 독방이라 하며 좋아라 하였으나,

 

이내 조금 큰 도시로 들어 온 둣하더니 대학생들이 마구 솥아져 들어 왔다.

 

 

검표원과 학생들

 

 

 

앞자리 3, 그 윗자리 3.  윗자리 3, 

내 옆에 2, 내 윗자리. 3

그 윗자리 3 맞은 편 아래위 3+3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우르르 안더니 

떠들고 웃고 더러는 헨폰의 무엇을 듣고

 두 넘만 책을 펴더니 공부를 하였다 역시 여기도 범생은 있네!

 하필 조용한 내 잘리에다 전을 펴는지아마도 내가 선하게 보였나 보다

 

 

 

넘들 내 자리 삼분의 이는 차지하고

 위아래 아주 싹 슬이 하는 것 까지 좋았으나

그 나이에 맞게 쉼 없이 떠든다.

 

 

 

그 중 건너편 머슴애 하나세로의 이층 머슴애 하나는 책 꺼내어 공부 하니 기특한데 그것도 잠시..

 

내 체격 두 배 반

 

 

 

붉은 금박 박희고 옷에 손가락 반 이상 반짝 금반지

금 목걸이 코걸이 누썹 걸이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조리 걸고 발찌발가락찌 한 아줌마 등장

 

 

 

그 아줌마는 검표원 이였다.

 

 

 

참새 때처럼 짹 짹 거리던 학생들

팥 빙수 얼음 갈아 쏟아지듯 조용해 지는데

검표원 아줌마 한 학생의 이마를 손으로 마구 짓 이겼다.

 

 

 

옆의 아이는 귓볼을 한 뼘은 잡아 당겼따.

모두들 꼼 짝 없이 가방배낭에서 학생증을 꺼내 받힌다.

 

 

 

무시한 검표원 아줌마,

기차 칸의 지붕이 떠나가도록 소리 지르고 야단을 쳐댔다

학생들 꼼짝 못하더니 모두들 지갑에서 돈들을 꺼낸다.

 

 

 

그러니까.

이들은 무임승차 하였던 것이다.

 

 

 

어떤 넘은 책을 꺼내더니 책갈피 마다 탁 탁 털어 비상금을 몇 장 떨구었고

 

.....

정말 웃었는데 난 너무 크게 웃었던 것이다.

웃으면 안되는 이 웃기는 현장에서

 

 

 

 하 하 하...머리를 의자에 박고 웃었다.

 

 

 

앞의 넘은 

엎드리더니 구두끈을 풀고 양발을 벗더니 그 속에서 지폐 두장을 꺼냈다.

 

구두 안 양말에서 지패를 꺼냈다.

 

 

 

검사원 앞에 죄인이 되어 엄숙하여 있는데 마구 웃어대는 나.

 

 

 

학생들 모두의 쌈짓돈을 합하여 보지만 택 도 없나 보았다

 

 

 

이쯤 되니 나는 저들의 차비를 내 줄까말까?

하는 잡스런 생각에 미쳤으나 하지 말 것을 속으로 다짐하고 있는데

.

또 한 분의 작은 체구의 여자 검사원 등장

마찬가지로 몇 녀석을 쥐어박더니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 학생들은 간혹 공짜로 기차를 타고 다니는 모양인데 오늘 갑작스레 검표를 한 것이다.

 

 

 

바로 또 한사람 남자 검표원 등장

모자옆구리에 몽둥이가슴에는 금박의 이름표인지 달고

 

 

 

다음 역에 이르니 학생 모두들 델고 나가는데

 짚푸가기로 엮지만 않았지 굴비 역듯이 꼼짝 못하고 엮이어

 검표원들을 따라 갔으며 기차는 출발 했다.

 

 

 

평온한 농촌의 모습들

강을 지나고 철교위를 달렸으며 역이 가까워지면 하루치의 먹을 거리를 영위하는

 움막촌에도 오순도순 가족들의 저녁거리로 작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네 땅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글어가는 벼들이 펼쳐진 논한가히 풀 뜯는 소실 개천이 

흐르고 까마귀 떼들이 줄지어 하늘을 날라 갔으며 

석양이 지더니 어둠이 내리고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렸다.

 

농촌 

 

아그라 - 바라나 기차 안에서 

 

 

 

아그라 출발  11 40분 발 차는 자정이 넘어서 들어 왔으며

 바라나시에 도착한 시간은 도착 시간 두 시간 지난 다음날 오후 2시 였다.

 

 

 

차표를 들고 찾아선 내 자리에는 인도 가족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죄송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 자리이니 비켜 달라 하였지만 

조폭 영화의 넘버 3처럼 턱 수염 조금난 남자는 대꾸도 하지 않았으며

 옆 자리의 넘버는 저리 꺼지라는 손짓을 한다.

 

 

 

나는 한층 더 수그리며 

'여긴 내 자리이니 비키시오.'

 

 

 

그들은 10분만 더 가면 자기네들은 내리니 그 때까지 저기 쭈그러져 있으란다.

 

 

 

나는 한 톤 높이여 

'아니요.'

 표를 보여 주면서

내 자리에 앉겠다.' 하였더니

 

 

 

가족 일행들 모두 저리 가서 쭈그리고 있다가 지네들 내리면 오란다.

 

 

 

싫다 나는 내 돈 내고 표 끈엇으니 내 자리에 앉겠다

넘버 3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면서 강력 접착제 붙은 듯한 자리를 간신히 떨구우며 비켜 주었다.

 

 

 

이젠 내 무거운 배낭을 자리 아래 넣어야지.

 

 

 

아래를 보니 가방이 꽉 차있었다

어찌 옆으로 이동하면 내 배낭이 들어 갈려나

하면서 트렁크 가방 하나를 손으로 만지는 순간!

 

 

 

난 기차 지붕이 내려 안는 줄 알았다.

 

 

 

노 탓치유 갓 뎀노 터치.’

 

 

 

어찌나 큰 소리인지 나는 뒤로 나 잡빠 졌다.

 

 

 

옆의 식구들은 희죽거리며 실 실 웃었고

 

 

 

'이런 쌍넘의 세꺄들!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한국말로

 

 

 

주둥이 닥쳐 쌰 꺄 누님이여이 쓸데없는 쌍넘의 쌰꺄.’

너 영어 하니?’

나 영어 몰라샤 까 영어가 뭔 필요해.'

노 탓치 마이 가방.'

 엄청 큰 소리다.

 

 

 

난 더 큰소리로 떠들면서 그 넘의 눈 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면서

죽일넘의 새끼.’

3여분은 서로 죽을 둣 소리 지른 것 같다.

 

 

 

넘버5가 경찰을 부른단다.

좀 큰 역이라 아직 기차가 출발 하지 않았고 플렛홈에는 경찰이 보였다.

 

 

인도 기차

(도무지 어느 칸을 타야 하는지 차표를 보아도 잘 모르겠음)

 

 

 

이내 경찰이 들어 왔으나 내가 뭐 잘 못한 일이 있나?

 

 

 

이번 여행에 다시 한 번 내가 한국인 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언제 어느 곳을 가든지 한국에서 왔다면 반가이 맞이하고 다시 한번 처다 본다.

 

 

 

우리네 국가가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발전해 있는가 말이다.

 

 

 

경찰은 한국서 왔다는 올드 아줌마에게

월컴 인디아.'를 연발하며 잘하라 하고 내려갔다.

 

 

 

그나저나 앞윗자리 모두 저 가족들 한 무리인데 

나 혼자 절데 불리한 위치에 놓였으니 큰 배낭을 두고 화장실 가기도 약간은 겁난다.

 

 

 

어쨌든 좀 가다가 내린다니 그때 까지는 감시를 철저히 해야지 하면서 있으라니 

그들은 내가 내리는 바라나시 까지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내린 것이다.

 

 

 

잠이 들다 깼다 하면서 이내 내 행동을 후회 하였다.

넘버 3가 소리 지를 때 그냥 수줍잖은 미소로 응답 하였다면... 

왜 나는 그러지를 못하였을까?

 

?

 

항상 분을 참지 못할까?

 

참으로 미천한 여자여.

 

명상에 잠겨 보지만 헛일 자다 깨다 반복 하는 나를 깨워 주면서 바라나시라고 알려 준건 넘버5,

넘버 3는 얼루 가고 보이질 않았으니 

넘버가 알려 주지 않았다면 자느라 바라나시를 지나 계속 갔으니.

 

 

 

겐지즈 강으로 하여 인도양까지 갔으려나?

 

넘버5와 그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감사를 표하니 

넘버 5도 웃으면서 잘가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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