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도시 암리차르 -골든탬플
파키스탄 쪽은 간단히 끝냈으나 인도 측에서는 배낭의 모든 것을 까 뒤 집에 내 놓으라 하였다.
나이든 아줌마 혼자 무거운 배낭 메고 장기 여행한다는 것은 무리수다.
어쩌다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중국 카스에서 만나 동행하기로 한 그녀는 아직도 훈자에 있고)
잠시라도 혼자 있다는 것,
외로움을 더하여 정말 싫어하는 것인데
바라나시에서 만나 함께 네팔로 넘어가지는 영준씨를 향하여 부지런히 바라나시로 가야 한다
고국의 지인들, 딸, 아들(살아서 돌아오라는 아들)들은 걱정이 태반이니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몸 다쳐 어찌되면 걱정하시는 모든 분들께 피해를 준다.
15k 배낭을 어깨에 메자면 몸이 휘청거리고 다리가 후들 거리는데
혹 시나 돌 부리, 길 보도 블록에 툭 하니 부딪혀 넘어지기라도 하여
여행 중단하고 귀국길에 올라 병원 신세지고 X레이- 더나가 MRI 등 더하면 돈이 팍 팍 올라간다.
그리하여 몸이 상하면 몸도 문제지만 그 몇 배에 달하는 돈이 올라가기에
파키스탄 쪽에서는 버스에서 내리면 출국사무소 근방까지 코끼리 차가 있고
차에서 내리면 짐꾼들이 있었다.
150 루피에 배낭을 맡기고 파키스탄 쪽 통과
이젠 배낭을 인도 쪽 짐꾼들에게 맡긴다.
150루피란다.
인도 쪽의 물가가 더 비싸기에 똑 같은 150 루피지만
그려러니 하고 맡기고 절차 끝내고 강렬한 햇살이 목덜미를 삼키는 주차장으로 나가서
150 루피를 주는 순간 머리에 터번을 눌러쓰고 수염이 젖가슴까지 내려오는 인도 짐 꾼 300 루피란다.
‘아까 150 루피라 했잖아.’
‘그건 저 안쪽 까지고 이곳 주차장 까지는 300루피.’
‘그럼 왜 이야기를 안 해 주었나?’
‘니가 안 물어 봤 잔아.’
말로만 듣던 인도인들의 행실에 국경 넘자마자 당했다.
이곳에서 국기 하강식은 오후 5시 30분이 되어야 하고
지금 시간은 정오를 막 벗어 났으니 그 시간 까지 기다리면 지 칠 것 같아
일단 암리차르로 들어가기로,
주차장은 한산 했으며 파키스탄 쪽에서 넘어온
두어 그룹의 사람들은 저마다 차에다 빈틈없이 물건들을 실고 떠났다.
그들 틈에 끼어 가고자 하였지만 빈틈없는 자리에 포기하고
그늘로 피해 들어오니 수염이 한 치를 넘어 마당 빗자루 만큼 길은 남자 운전기사가
마구 떼를 쓰면서 자기 차를 타라 하는데
좀 전에 타당치 않는 이유로 짐꾼에게 뜯긴 돈이 생각나
‘이곳은 인도 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는 쇠뇌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누군가 나오길 기다려 보았지만 열기가 가득한 주차장에는 기사들의 느릿한 움직임만 계속되더니
한 가족이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고 있었다.
파키스탄인으로 남자, 부인과 5살 여자아이 둘이였다.
그들에게 암리차르에 들어간다 하고 함께 가면 내 차비를 주겠다.
하였더니 차비는 필요 없고 그냥 타란다.
수염 긴 인도 택시기사는 파키스탄인 이들을 아는지 연신 굽실거렸다.
택시에 오른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는데
그들이 호텔로 가면 그 호텔로 가고
역으로 가면 역으로 가서 아그라행 표를 끈을 것이고
혹 어떤 이들의 집으로 간다면 그곳 까지 따라 가볼 작정을 하였다.
쌍둥이 두 딸은 인형처럼 예뻤는데 딸 하나는 앞 자리의 아빠 무릎에 앉아 있었고
파키스탄 아빠는 연신 딸에게 뽀뽀를 하면서 사랑을 표시 해 주었다.
쌍동이 파키스탄 소녀
앞자리에서 인도인 기사와 그는
계속 무슨 대화를 이어 갔으며
어떤 가게 앞에서 잠시 주차를 하였는데 두 딸에게 줄 주스와 과자를 쌋으며
이 돈은 공짜로 타고 오는 내가 지불 하였다
.
그들이 내리는 곳은 기차역.
이곳서 무슨 도시를 간다 하였으며, 파키스탄인은 기사에게 나에게 아그라 가는 표를 끊어 주는 곳 까지
가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잠시의 만남을 아쉬워하면서 이별을 하였다.
수염긴 기사는 친절히 아그라행 기차와 아그라-바라나시 기차를 끊는 곳까지 동행 하였다.
표를 끊는 순간 내 옆에 모자를 눌러 썼지만 분명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 분이 계시 길래
‘ 한국 분 맞으세요?'
‘예..’
하고 그가 뒤 돌아 보는 순간
이게 누구야. 장이였다.
‘야. 너 왜? ’
‘저. 델리 표 끈을라구요.’
그도 놀랐다.
어제 아침 라호르 숙소에서 인도로 먼저 떠나더니 암리차르 기차역 표 끈 는 곳에 보다니.
난. 이젠 너 안 보았으면 좋겠어.
표 끊어주는 직원과 잠깐 이야기 하고 고개를 돌리어
그를 찾아보니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았다.
무슨 죄 지은 것도 아니고 바람 같이 사라져 버리다니.
골들팸플
솔직히 암리차르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인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암리차르는 인도 변방의 도시라 덜 하다지만
작열하는 태양
온갖 경적 소리(인내를 가져야 한다)
소. 개. 염소 등의 길거리 활보, 배설물.
코, 팔에 순금 코걸이를 한 거지여자
뻔뻔하게 돈 달라는 어린이들
도시의 길모든 곳애 쓰레기.
외국인들에 바가지 요금에 씌우느라 눈이 쌔 뻘건 인도인들.
까만 때가 떡칠한 손가락 발가락의 반지. 발찌는 이해가 가도
씻질 않아 까만 발가락 싸이 싸이의 발가락 반지
현란하여 정신 줄을 빼 놓는 여자들의 옷 색깔
인도가 뭐가 좋아.
그간 여러 나라들을 다녔지만 인도는 처음이다.
빨리 네팔로 가리라 맘먹고
일단 이곳은 시크교의 본산이니
골든탬플로!
오!
나의 인도 편견을 한 방에 날려 버린 곳!
굳이 줄줄이 이곳에 쓰지 않아도 인터넷에 ‘시크교’ ‘암리차르 골든 템플’ 치시면 다 나오리라.
맨발로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종교의 힘과 인도의 힘을 동시에 보았다.
날은 푹 푹 쪘지만 황금사원 건물 중앙 본당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시크교인들의 긴 줄
줄에 붙어 있는 사람들
위로는 그늘이 있었지만 사람과 사람 싸이는 찹쌀떡 이음 처럼 딱 딱 붙어 있다.
등에서 1mm 의 틈도 없이 코는 앞 사람 등에 붙어 있고
그 사람 뒤에도 마찬가지.
줄은 움직이질 않는데.
저 본당 안에 시크교의 교본 등이 있다 하는데
인도 전국에서 보러온 시크교들인 들의 긴 긴 행렬이다.
이 무덥고 푹 푹 찌는 날 꼼짝 하지 않는 줄에 딱 딱 붙어 서 있다.
저 안에 들어가길 위해 서 있다.
사원안에 들어가기 위해 줄 쓴 교인들
시크교 자원봉사자
들어오기전 신발 받아 주는 봉사자
깨끗한 스텐 그릇에 가득 담아주는 차가운 생수
공짜로주는 주먹 밥
배식 판에 몇 가지를 담아 주는 점심 식사
무료로 나누어 준다.
황금을 지붕에 이고 있는 사원 아래에는 깨끗한 호수
교인들은 물속에 들어가 기도와 명상을 하였으며 이곳에 온 것을 행복해 하였다.
이곳은 그들의 신성한 최고 성지이니까
숙소에서 정해 주는 릭샤를 탄다.
그 릭샤는 나에게는 하루 자가용이다.
왕복 릭샤 값에다 조금만 더 주면 아주 충실한 기사가 되어 일정의 마무리로 숙소 앞까지 온다.
박물관이라고 하였지만 유적들은 유럽에서 다 뺏어가 버리고
요즘그린 그림 전쟁, 왕,그림. 권총, 장총등 을 둘러 보고
략사 기사의 이름은 잊어 버렸다.
착실한 인도인 이였으며, 오후 와가보드로 갈 때 점심 식사를 함께 하였으나
내 앞에서 먹질 않고 구석의 자리에서 먹었다.
인도의 계급제 때문일까?
오토릭샤는 자기 것이 아닌 주인이 있다 하였고,
하루 300루피를 주인에게 받쳐야 한다 하였다.
아직 결혼 전이지만 언젠가는 결혼 할 거고 아버지, 엄마, 동생들이 7명이라 하였다.
약국. 우체국 등에 들이러 와가보더 도착 시간은 오후 4시.
‘왜? 이렇게 빨리 왔니?’
‘어쩌구, 저쩌구...’
세레머니 시작은 5시 30분인데 어찌 이렇게 빨리 왔다냐?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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