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만년설을 양 사방에 두고 있는 훈자는 낮에는 건조 하며 햇살은 따갑다.

 

 

비가 개이고 난 후 계속 오르 내리는 구름

 

 

이곳은 좀 체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데 오늘 오후까지 비가 내리더니 

저녁 되기 전부터 개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는 가는 빗줄기 였으나 구름이 산을 내려와 산들의 허리를 휘감고 훈자를 덮쳤다.

 

훈자는 구름과 가는 빗줄기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였으며 

시간 별로 움직이는 구름들이 코앞에 까지 왔다가 올라가곤 

하는데 이곳 사람들 성품처럼 아주 천천히 올라간다.

 

라오스 롱끼아우의 아침 구름들은 연기처럼 피어올랐었고 

바람처럼 빠르게 흩어 졌었지

이른 아침에 다리에 나가 본 나는 그 풍경에 너무 놀라 하늘로 치솟는 

구름 따라 내 육체가 조각나는 줄 알았었지

그곳 주민들의 성격들도 느긋한 성품 이였었다

메콩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줄기 위라 일교차가 심해서 이였을까?

 

지금의 훈자는 해발 2000M 정도라지만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은 5000M 

이상 이라니 저곳에는 만년설이곳은 비가 오고 있었다.

 

오늘 온다던 그녀는 어제 메일에서 9 28 일 온다 하였다

 

바쁠 것 없는 카스 시내.

이국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시

위구르족들이 느긋한 움직임.

숙소의 창 너머 강이 좋고

특히 중국 젊은 여행객들과 밤마다 곡주 먹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고

대충 이런 내용 이였다.

 

 

중국의 카스!

숙소인 마인 티인!

 

숙소의 창에서는 투만강의 흐름이 항상 보였으며 그 야경 또한 심금을 울려 놓았었지.

 

그녀와 나는 일정이 안 맞나 보다

 

이곳 훈자에 매료되어 한두 달 있다 가시는 여행객들도 있다

 

종원씨는 20 일정도 지났는데 10월 한 달 더 있다, 11월 초에 인도로 들어간단다.

 

뒤 따라온 장동건과 나는

훈자의 매력을 별로 느끼질 못한다는 뜻이 맞았고

나는

이곳에 더 있다가는 이곳 사람들처럼 아무일거리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나태함으로 도태될 것 같아 떠나리라 맘 잡았다.

 

중국 카스부터 그녀와 함께 할 것이라는 처음의 마음에 내가 준비한 정보들은 중국

약간의 파키스탄인도 네팔 이였는데 떠날려니 걱정이 앞선다.

 

그녀가 오려면 아직 5일 더 있어야 그녀는 이곳이 좋아 1 개월 이상 있겠다하였는데

 

도대체 이곳이 뭐 그리 좋을까?’

 

장동건과 나는 왜?

라는 결론에 합의 하였고 더 이상 있고 싶질 않았다.

 

장은 숙소를 복마니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일본 21살 여행객과 내일 길깃으로 떠난다 

나도 묻어가자고 말 할라고 오전에 식빵과 손수 만든 사과 쨈을 들고

복마니 게스트로 비실비실 올라갔다.

 

장은 자고 있었고 일본 처자(21왔다 갔다 하는데 장을 깨웠다

장은 두통이 심하다고 하면서 어젯밤에 훈자 워터(훈자 민속 술)마셨단다.

 

중년의 미남 장과 처자가 길 떠나 간 다는데 올드 아줌마가 묻어가겠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저녁 먹으러 와라.' 하고 숙소로 왔다.

 

오면서 감자를 몇 개 살려고 저울에 달고 돈을 찾으니

 배낭을 메고 오지 않아 돈이 없었다

가게 주인에게

 

돈이 없다있다 온다’ 하니

 

그냥 가져가고 돈은 나중에’ 달란다.

 

... 지나가는 여행객을 뭐로 믿고 감자를 먼저 주고 돈은 나중에 줘도 된다 할까?

이곳의 숙소 여행객들은 방문을 안 잠근다.

 

종원씨의 방은 4인용 인데 올라가보면 외출하고 아무도 없을때 

 노트북카메라 광곽 랜즈망원렌즈충전기 나가는 점퍼 들이 흩어져 있다.

 

나 역시 외출 할 때 노트북탭등 늘어놓고 문 안 잠그고 나간다.

 

도둑이 없다는 것이다.

 

숙소비는 나갈 때 한꺼번에 준다는데 이게 여기서만 가능 할 것이다.

 

중국은 어느 곳에서나 보증금을 내야 했었고 

아웃 할 때 보증금 영수증이 없으면 그 돈 못 받았다.

그들의 숙소 시스템은 참으로 합라적인 것이다.

 

방 배정 해 줄때 보증금 받고 침데 시트벼개 겁데기이불 카바를 준다

이것들을 여행객 각자가 방으로 들고 들어가 끼운다.

아웃 할때는 이 것들을 모두 뱃겨 카운터에 반납 한후 보증금 돌려 받는다.

 

훈자에서!

듣는 소문에 의하면 몇 년 전 여행객 하나가 한 달 이상을 방 값,

식사 값 안주고 새벽에 가버 렸단다

 

그 사건 있었다면 훈자의 사람들은 여행객들의 단속에 들어가야지,

 

그들의 습성으로 지끔가지  나가는 날계산하는데 

이곳의 모든 숙소는 여행객이 나간 는 날 돈 받는다

 

어제 낮에는 자그마한 체구에 까만 색의 곱슬머리,

앳돼 보이는 20살 초반의 청년 여행객이 흘러 들어 왔다.

 

그의 배낭 아래에는 아주 작은 멜로디언(MELODICA) 가 데룽 달여 있었다.

 

악기를 보는 순간 반가워

 

어데서 왔냐? ’

물으니까.

 

칠레

 

어째 칠레서 이곳 까지 흘러들어 왔니?

이름은 단테라 하였으니 신곡의 저자 단테로 하여금 그 청년의 이름은 금방 외워 졌다,

나이는 22, ‘산티아고에서 왔단다.

어제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해 질 무렵 방 안에서 

오카리나를 불고 있으려니 칠레 꼬마 총각 방을 기웃 거렸다.

 

저도 악기를 기지고 다니니 반가 웠나 보았다.

 

밤이 왔으며 거실에는 여전히 텅 비어 고요의 장막이 흐르고

있었는데 칠레 총각이 혼자 앉아 있었다.

 

나를 보고 악기 불자 하였다.

지도 가지고 오고 나도 가지고 나오고

내가 먼저 ‘엘 콘도 파샤

그는 작은 멜로디카를 양 손으로 연주를 하는데

바흐 곡을 감정 풍부하게 멋드르지게 연주 한다.

 

 이것 바흐 곡이잖아.’

 

내 아들의 차에는 언제나 바흐곡이 흐르지.

아들은 바흐곡을 몽 땅 가지고 있다 는데 바흐의 열열한 팬이다.

 

내가 바흐 곡을 단번에 알아 맞히자 칠레 꼬마 총각 웃음이 환해진다.

 

탱고와 살사 음악을 연주 하였고 폰에 저장해온 탱고 음악을 틀더니 춤을 추자 하였다.

 

탱고 못 춘다 하니 몇 박자 레슨을 해 주었고 나는 준비 해온 악보 몇 장을 주었다.

 

칠레 청년 단테가 찍어 준 흑백 사진 

 

단테는 바흐곡텡고살사등의

음악을 썩 잘 연주 하였다 .

 

그는 이곳 사람들이 항상 쓰고 다니는

 모자를 싸온 것이 이었는데 내가 써 

보니 멋지다며 사진을 찍어 주었고 나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며!’ 가지라고 했는데

쌩큐 노노..‘ 받질 않았다.

 

모자는 양털로 만든 베레모처럼 생긴 것 이였으며 연한 아이보리 색깔이였다.

 

 이곳 훈자 사람들은 거의 이 모자를 쓰고 다닌다

 

칠레 고마 총각도 가지고 싶어서 쌋을 것이고 가격이 싼 편은 아니었기에

저 꼬마 총각한테 받는 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슬라마바드 NGO에서 일하다 끝나고 지금은 여행 중이며 

인도로 가서 다시 NGO일을 한단다.

 

아주 똘망 한 눈동자와 예의를 깍듯이 지킬 줄 아는 25살의 청년 이였다.

 

칠레에 산티아고 오면 자기네 집에서 자고 먹고 하라는데

 

너 언제 칠레 가?’

 

언제 갈지 몰라

 

나도 남미 언제 갈지 몰라.’

 

너도 서울 오면 우리 집에서 있어.’

 

서로의 이 메일집 주소헨폰 번호를 수첩에 주고 받았다.

 

밤이면 칠레 청년과 악기를 연주 하였고

우연히 아침에 거실에서 만나면 삶은 계란식빵토마토 등을 나누어 먹었다.

 

그는 받아먹으면서 상당히 미안하는 표정 이였는데

내 아들이 32딸이 28살 그러니너는 내 아들 이야.’

 

 

훈자~~!

법 없이 살아 가는 곳

법 따위는 필요 없는 곳

화병정신병이 없는 곳

있는 데로 먹고 주는 대로 살아가는 곳

바쁘다는 단어가 필요 없는 곳

시기와질투사치미움걱정분노두려움슬픔이 있을 수 없는 곳

훈자~~!

내가 도망치듯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저들이 이렇게 살아가니

도심의 잿빛 그늘에 찌들은 나는  순수함을 잃어 버려 

두려워서 일까?

 

장과 일본 처자가 저녁 먹으로 우리 숙소로 왔었고

내가 준비 해 놓은 저녁을 먹었다.

 

듣는 정보에 의하면 이곳도 음력 8 15일 전후로 연휴에 들어가고

각 마을 마다 축제가 있단다.

 

24 (내일부터) 27일까지 거의 장거리 버스 운행이 없단다.

 

졸지에 훈자에 갖흰 샘이다.

 

장도 ‘이곳이 도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하였다.

염치불구 하고 장에게 묻혀 낼이라도 떠나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이곳에 더 있다가우리네 땅으로 가면 내 패스를 못 찾을 것 같아.

모든 게 너무 느리잖아.

내가 50여년을  살았던 곳대한민국이라는 곳은

 일분일 초가 바삐 움직이며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져.

이들처럼 느긋하게 살아오질 않았잖아.‘

 

길깃까지 가는 작은 차들이 있다지만

길깃서부터 이슬라마바드까지는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칼리마바드(훈자) -알리마바드-이슬라마드 =버스로 23시간~26시간없다 하였다.

 

길깃가면 물가는 약간 비싸지만 마땅한 숙소도 없고길깃서 할게 뭣있나?

작전을 짜야 갰다 28일 이나 나가려면 아직 4,5일 남았는데생각을 바꾸자.

 

저들의 느긋함을 비켜나 쏘다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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