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을 하루 렌트하여 쌩쌩 달려갔다

 

물론 나는 운전을 못하니 앞자리는 훈자 38 살 남자

(대여비 2,000 루피-기름 값운전비모터사이클 대여비)

숙소 일꾼 영민이의 친구라 했는데

이름은 바야스라 하였다.

 

한쪽 눈은 약간 초점이 맞지 않았고 

담벼락에 붙어 있는 호박 넝쿨 보다 더 순진하게 생겼다.

 

 

훈자 마을을 벗어나 큰 길에서 소스트 방향으로 접어드니

이 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3번째내려온 것 까지 4번째 가는 길이다.

 

 

훌륭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같은 장소를 열 번 이상 가야

가장 알맞은 포인트를 찾는다.'

 

 

라는 것은 비단 사진영상 뿐 아니라그림음악의 영감도 마찬가지겠지.

 

그냥 한 번 쓱 흩어보고 지나치는 것과 본 것들의 주위를 다시 보면서

 상념에 잠기고 한때는 더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지난번에 차 안에서 보고 지나쳐온 암벽화를 자세히 보고자 내렸다.

 

 

도로에서 지나가면서도 보이는 곳이다철조망을 얼깃 설깃 쳐 놓았으며

AD,83 . 옆의 것들은 AD5 라고 안내판에 있으니

오래전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암벽화가 말 해주는 것이다.

 

 

아이맥스 산양눈 표범 같은 그림 인데 잘은 모르겠다.

 

 

 

 

암벽화는 모두 Rock 1에서 Rock V1 연결 되어 바로 옆으로 이어 진다.

 

 

열심히 이리 저리 살피고 있는데 기능 좋은 승용차 한 대 서더니

 보기 드문 유럽 관광객 남자 두 분이 성능 좋은 카메라에 타다닥 찍어 대더니 금방 떠나 버렸다.

 

바야스도 빨리 가자고 재촉 하였으며 다시 모터사이클을

쌩쌩 타고 산악 도로-하람코럼 하이웨이를 달린다.

 

낮이라 햇살은 따뜻하였으며,

만년설로 시작하여 아래 훈자 강물에 적시어 올라오는

 바람은 모터사이클에 붙어 앉아 있는 내 머리를 헝클었으며 감미롭게 뺨을 웃어 어루만져 주었다.

 

 

이곳도 우리네 추석인 것처럼 오늘부터 무슬림 휴가 기간이라 도로에는 거의 차들이 없었다.

 

 

왼쪽 비포장도로로 접어드는데 지금은 도로가 뚫리어 배 탈일이 없는

아타바드 레이크-

설렁하기 짝이 없는 선착장에 어울리지 않게 호수의 물은 깨끗했고 옥빛이었다.


라호르에서 오셨다는 가족 한 팀 외에는 아무도 없는 텅 비어버린

 

 

내 마음 같은 설렁한 선착장.

내 가슴은 허전한데 라호르의 가족들은 한국서 왔다는 나를 그냥 보내질 않는다.

역시 사진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한국의 다큐 TV속에서 본 것과는 달리 배들은 생각 보다 컸으며,

사공들은 배를 타 보라고 다그쳤다.

 

눈치만 살피는 바야스는 어정쩡히 서 있었고

 

 

저 배를 타야 할까말까?’

1. 여행 하면서 많은 배들을 탔었는데

굳이 아타바크 레이크 호수의 썰렁한 곳에서 배를 타고 쌈짓돈을 축내야 하나?

 

 

2. 저 배를 탄다면 사공--바야스 3명이 타는데 배 전세 낸 것이야.

 

저들도 낼 모래면 무슬림 추석휴가 가는데 내가 타준 작은 배 삯의 돈이

집으로 향할 때 가족을 위하여 큰 보따리를 가져 갈 수 있겠지

 

.

 

1,000루피 즉 한국 돈 10,000원에 저 배를 타고 호수를 빙 돌아온다는데

 갑자기 나는 선박 주인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네 돈 일 만원술집의 소주 3병 값에 배를 전세 내어 탄다,

 

물은 손 담그기조차 맑았으며 바람조차 건드리기 아픈 순수함 고요의 옥 빛 이였다..

 

 

 

배의 모터가 다다다‘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배는 호수 저편으로 달렸다.

한 점의 티도 없는 듯한 호수를 뒤로 하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되돌아오는 길

왼 쪽에 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이 있는데

그 길 바로 위 공동묘지를 지나서 비포장을 오르기 시작 하였다.

 

 

울퉁불퉁굵고 작은 돌멩이들이 길에는 깔려 있었고 좁은 길이였다.

 

오르고 오르는데 왼쪽 아래는 천리 낭떠러지.

까막득한 저 아래 훈자 강물이 철 철 흐르고 있었고

모터사이클은 있는 힘 다해 오른다.

 

돌멩이자갈들이 나 뒹구는 좁은 길을,

여차잘못하면 튕겨져 저 까막득한 계곡으로 이 몸이 떨어져 산 산 조각 날 것 같아.

 

앞의 바야스에게 내 무서움을 말 했다간 더 올라 갈 것 같지 않아 

머리를 좌측으로 하여 눈을 질 끈 감았다.

 

사람의 본능은 두려움에 숨고자 하지만 그 속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자꾸 알려고 보게 된다.

 

이 본능으로 여차 하고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리는 순간 

바야스의 작은 실수로 모터사이클은 뒤뚱되고

 

오 마이 갓!’ 내가 이길 에서 죽겠구나!‘

 

여태 살면서

오늘 죽어도 삶의 미련은 없다죽음은 두렵지 않다.’

 

하면서 주위 분들에게 말해 왔었는데 막상 이 순간은 몸이 굳어 버리더이다.

 

 

초 급속 냉각기에 들어간 내 육체는 굳어서 꼼작 못 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바야스는 조금 더 가더니 모터사이클을 새웠다.

 

 

더 위로 올라가면 뭣이 보이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농약 먹고 죽어가는 강아지처럼 옆으로 픽 쓰러지듯 내려앉았다

온 몸은 굳어 있었으나

 

!’

함성이 나왔다,

이곳은 훈자속의 칼리마바드 모든 것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혼자의 품 안에서 노닐고 있을 때는 정작 칼리마바드의 본  모습은 볼 수 없었지.

 

사진을 키워 보면 가운데 설산이 디란 포크 

 

칼리마바드 맞은편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그곳의 풍광은 당연히 새로웠다

다란 피크, 라카포쉬의 정상은 더 없이 크고 웅장해 보였다. 

 

저 아래 까마득히 훈자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더 높은 하늘에 맹금류 한 마리가 구름 속을 나르고 있었다

경치에 취해 바람에 취해 넋 놓고 있는데

 

바야스가 물었다.

너 몇 살이니

나 ...음....세븐틴..(17살) 너는?

‘38.’

초점 맞지 않는 멀뚱한 눈으로 다시 물었다.

 

 

아들, 딸 있니?’

아들 하나딸 하나

바야스 다시 묻는다.

 

 

아들은 몇 살이고 딸은 몇 살이니?’

----

아들은 33살 딸은 29살'

순진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를 굴리며 한참을 살피다가

 

 

우리 맘이 57너는 우리 맘과 같은 나이야.’

.. ... ...

나는 웃었고

 

 

그러면 너 엄마와 나는 동갑인 것 같은데 너 엄마는 내 친구야.’

 

바야스 말한다.

그러네.’

그럼 너희 집에 가서 너 엄마 보자.’

 

 

우리 집 초라하고 작아.’

노 프라범.’

 

 

바야스의 집은 칼리마바드 마을 아래쪽에서 기니쉬 가는

큰 길에서 꼬불 꼬불 20m 정도 걸어 들어갔다

가기전 계란 20알을 싸들고.

 

훈자의 골목에서 보아온 사람들에게 늘 말 하듯

 

앗 쌀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들이 영어로?

 

하우 알류?‘

나는

‘와 알라이쿰 쌀람!’(당신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인샬라(신의 뜻 대로)

 

사람들을 마주 할 때 마다 아는 체를 하니 나도 이 단어들을 연발하여 지나간다.

대문 앞에서 또 한 번 바야스

 

우리 집 초라해.’

노 프라범.’

 

 

엄마와 누나는 밭일 나갔고

전형적인 훈자 마을 사람들의 작은 집이였으며 방 안은 정리 되지 않은 옷가지,

이불들이 흩어져 있었고 부엌이라고 해 보았자 세간 살이 몇 개 없는 도구였다.

 

 

어찌 알았는지 앞뒷집의 꼬마들이 우르르 집으로 들어 왔다.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당에는 옥수수해바라기붉은 붓꽃

(우리네 시골 마당의 꽃과 똑 같았다.) 들이 활짝 피어 있었으며

다 익어가는 석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연자 맷돌 한 짝이 마당 귀퉁이에 있기에

한국에도 똑 같은 것을 사용 한다,’ 하였다.

 

 

바야스는 광으로 데려가 한 짝의 연자 맷돌을 보여 주었고 감자를 담아 주었다

 

 

뒷마당으로 돌아가 토마토고추사과를 가져가라 하였다.

 

이곳의 고추양파는 우리네 맛과 똑 같다.

 

열심히 따서 봉투에 넣고 돌아오는데 이마에 걸쳐둔 늘 끼고 다니는 썬글라시스가 없었다,

 

혹 시나 하고 계란 샀던 가게에 들르니 놀란 그들이 그 곳에 없다 하며 고개를 젓는다.

 

바야스는 그 좁은 골목을 모터사이클 타고 마구 올라갔다.

 

 

아까 고추 따느라 떨어트린 것이었다.

 

 

다시 찾았으며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였다.

 

 

그 싸이 밭 일 나간 엄마두 누나가 오셨다.

 

 

엄마는 작으나마 외국 여행객들에게 일을 해주는

 아들을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누나는 지붕위에 올라가 말려 놓은 살구 한 봉지두 한 움큼을 주었고 짜이를 끓여 왔다,

 

동내 꼬마들은 하나 둘 늘어나더니 빙 둘러 섰다.

 

누나 한분은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검은 자국의 점들이 박혀 있었다.

키도 작았으며 자라다 중단 한 작은 손이였다.

 

무슨 병을 앓고 있다 했는데

‘ 문둥병은 아닐까? ’전혀 필요 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진을 찍자 했더니 그 누나 해 맑게 웃으며 이내 찍는다.

 

주여.. 얼굴과 육체가 병들은 온 몸을...

내 자신의 모습이 저렇다면

난 숨어서 지내며 인생을 포기 하는 낙오자로 전략 할 텐데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저렇듯 맑은 웃음으로 사진기 앞에 얼른 다가서는 저 여자를 보소서!‘



(왼쪽-야비스 누나, 오른쪽-야비스 엄니) 

 

 

사진을 찍고 난후 한참을 그녀의 손을 잡고 신에게 기도 하였다.

 

 

신이시여.. 나를 낮추게 하소서.

내가 가진 이 모든 시간,

주위의 모든 것들이 얼마 만큼 행복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소서,,,’

 

 

거듭 손을 잡았고 서로의 가슴을 안으며

슈쿠리아쥬고르~~(안녕)’의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왔다.

 

 

발티트성을 돌아

숙소로 돌아 왔는데 깊은 밤이 되도록 굳은 몸은 풀리질 않고 다음 날 까지 떨림이 계속 되었다.

 

 

장기 여행자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거짓말이다.

 

특히 라오스미얀마베트남중국 운남성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도는 

산간 마을에서는 우리네 12월 이면 그들도 겨울이지만 난방 시설이 없다.

 

이곳의 숙소들도 마찬가지밤이 찾아오면 추위가 함께 동반한다.

 

그 날 밤 굳은 몸은 풀리지 않았고 

우리네 땅이 그리워 벌 벌 떨면서 겨우 잠들었는가.

했더니 꿈속에서 까마득한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 집에서 첫 닭이 우는 시간까지 잠을 설치다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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