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유하지 못하면 우린 결코 자신의 고통을 줄 일 수 없어요.’

<인도영화 더 블린(Ek. Villain 2014년 작여 주인공 쉬라타 까푸르의 대사 중>

 

 

 

내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들어 주어야 한다.

 

 

 

나는 남의 고통을 들어 주었는가?

 

 

 

언제나 그랬다.

 

내 가슴 속에는 타인의 고통 보다 수십 배 더 큰 아픔이 있다고 생각 하였고

 그 아픔을 나에게 준 신을 원망하였다.

 

 

 

생은 내가 생각 했던 아픔이 아니다.

 

 

 

난 너무 행복하다.

이 시간 이곳을 여행이라는 짧은 단어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신이 준 행복의 시간들이다.’

 

 

 

호팔 가는 길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시간의 위치를 새겨 보면 울먹였다.

 

 

 

이 길은 험했다.

길 건너 저 편의 훈자 마을에서 보기에는 산 속의 산,

첩 첩이 산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그들의 터전은 메마르고 척박하며 산 중의 산속에서 가장 간단한 살림 도구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없이 올라가는 비포장도로의 길 양 편에는

뭘 먹고 사는지 옹기종기 마을이 있었으며 행여나 길에서

지나가는 그들은 환 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뉴스에서 보아온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의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 해 보았다.

 

외부 세계에서는 이 산속에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질 못한다.

산은 물론 높았고 첩 첩 산이다.

 

희얀하게도 나무와 풀이 있었지만 어는 순간 경계선을 그어 놓은 듯 

한 곳서 부터는 풀 한포기 없는 흙과 돌이다.

 

 

 

그 위로 멀리는 만년설이다.

 

산으로 계속 올라가니 설산들이 가까워졌다.

 

 

 

미비한 작은 정보로 정보 의존하여 다니는 나로서는 호팔을 전혀 몰랐었다.

 

 

 

음력 8월 15일 전후로 이곳 무슬림 축제가 있어 이른 아침이 지난

시간 어슬렁어슬렁 마을 길을 배회하다가

 여행사 사무실의 사장의 차 한잔 마시러 들어오라는 

집요한 간청에 이끌려 차 마시던 중 빙하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경비를 줄이고자 장과 함께 가고자 장이 묶고 있는 가든 롯지로 갔었다.

 

가든 롯지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장과 일본 처자는 한 시간 전 호팔로 갔다는 것이다.

 

 

 

이런의리가?

(길에서 만난 여행자가 의리는 무슨 의리랴?)

 

하지만 장은 중국 카스에서 같은 숙소에서 있었고 나는 먼저 타쉬쿠르간-파키스탄

으로 왔었고그는 내가 온 후 4일 있다가 이곳으로 왔었지.

 

옷깃 만 스치어도 인연이라 하지 않는가

 

수 천만리 타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보면 반거워 맨발로 뛰어 나가는 심정이다.

 

 

 

내가 엊그제 길깃이나 이슬라마바드로 갈 때 함께 가자 간곡히 부탁 했건만

 말없이 일본 처자와 둘이 호팔로 달아 난 것이다.

 

무료하고 답답한 중 호팔이라는 곳을 들었으니 부지런히 짐싸 호팔로 가기로 맘먹었다,

 

숙소비 9일치와 주방 사용료 9일치-

 우리 네 돈으로 49,000원을 하이데르인 지킴이 영민 이에게 주었다,

 

9일 동안의 숙소비와 주방 사용료 49,000.

이게 파키스탄 훈자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급히 호팔로 떠나는 나에게 영민이는 12시에 알리미바드에서 호팔 가는 차가 있는데

 지금 12시가 넘었으니 차를 랜트 하라 하였고 저렴한 가격에 해 주었다.

 

 

 

영민이는 친구와 호팔 숙소 까지 데려다 주었고

이곳은 몹시 추우니 저녁이라도 내려 오라 하였다.

 

 

 

훈자는 가니쉬칼리마바드이글리스트등의 여러 마을을 품은 곳이다.

 

 

 

호팔을 가는 길은 칼리마바드에서 내려가 왼쪽(가니쉬 쪽)으로 다가보면 바로 다리가 있다,

 

바쁠 것 없는 두 사람의 경찰들이 상주 하는 검문소가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비포장도로로 접어든다

훈자 강 줄기를 우로 도고 산으로 산으로 계속 올라간다,

 

 

 

칼리마바드 마을에서 볼 때는 저 산속에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집들이 듬성 듬성 이어졌다.

 

 

 

아래는 강줄기 물이 흐르고 있었고 차는 위로 위로 비포장 도로를 거슬러 올라 갔다.

 

 

간혹 주민들과 어린 아이들도 오고 가고 나무가 있는 곳에는 집들이 이어졌다,

 

 

 

검정소가 나무에 묶여 있고염소들도 보였다.

 

 

 

차 안에는 감미로운 파키스탄 음악이 흘렀는데 나는 이 음악들이 듣기가 좋았다.

 

우리네 땅으로 돌아가이곳이 그리울 때 듣고자 노트북에 담아 놓았다,

 

 

 

계속 오르는 길에서는 여전히 집들이 이어졌는데 갑자기 비비람이 몰아쳤다,

 

 

저 아래 동네에는 햇살이 비추는데 산 높이 올라 왔으니 구름이 걸렸나 보다,

 

 

 

계곡의 물들은 칼리마바드의 회색 물과는 다르게 올라 갈수록 맑았다.

 

설산이 가까워질수록 맑아 지는 것이다.

 

 

 

칼리마바드 마을에서는 푸른 나무였는데 올라 갈수록 노란 색깔의 나뭇잎 들이다.

 

 

도로의 마지막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곳에 두 개의 숙소가 있었고

그 위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저 아래 빙하가 있는데 지금은 막 여름을 지나는 시기라 계곡을 따라 이어진 

짓 홰색의 뾰쪽한 가루인지,

흙인지 그 위에 아주 작은 얼음들이 흩어져 있었다.

 

 

 

 

호팔 빙하 트레킹 시작하는 길이 이었으며 아래로도 내려 갈 수가 있었는데

고산증으로 인하여 아래위를 쳐다 보니 머리와 몸이 어지럽고 빙 빙 돌았다.

 

 

 

칼리마바드에서 바라본 설산과 달리 손에 잡흴 둣 가까이 보였다,

 

 

 

지구의 지나온 역사하는는 호팔 빙하!

 

전망대 옆의 아주 작은 휴게소에는 할 일 없는 주민들이 차를 마셨고 장과 일본녀도 있었다,

 

 

 

나는 장에게 아주 반갑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뒤따라온 나를 동네 개 처다 보듯이 난감한 표정이었다.

 

 

 

장의 뒤를 따라 여기 까지 온 나를 주책 바가지라 자책 하여 보면서

젊은 남녀가 이국 여행에서 함께 동반하여 다니는 것이

 뭐그리 창피한 일도 아닌데 장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이내 숙소로 들어가 나오 질 않았다.

 

 

 

몹시 추웠다.

 

 

 

온수는 나올 질 않았고 물론 인터넷도 되질 않는 곳이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으나 궁금증도 있었고 주방을 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주방에는 주민 남자들이 5명 앉아 있었는데 그들과 실없는

 대화를 오고 가다 방으로 와 잠을 청하니 싸늘한 공기와 추위로 덜 덜 떨었다.

 

 

 

이곳에 오기전 짐을 몽땅 가지고 오면서 이틀 정도 있다 가려고 했건만 

내일 내려가야겠다넘 추웠다,

 

 

이른 아침에 잠이 깬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호팔의 산 위를 슬 슬 거닐어 보았다.

 

여전히 구름들은 산 중턱과 위를 오르락 내리락 바삐 움직였으며

 맞은편 구름들이 내려 오는 모습은 신비 했다.

 

사진 위쪽은 흙만 있는 깎아지른 절벽, 마을이 형성된

곳은 밭들도 있고 

 

 

 

 

아침 7시에 알리마바드로 가는 승합차는 50 루피

 

 

차가 미어지게 마을의 사람들을 태워 떠난다.

 

가다가 내리는 이들타는 이들.

 

 

 

산 중턱 쯤에서 코발트빛의 옷과 희잡을 쓴 어머니.

 

 

아들은 20 살 미만인 것으로 보였는데 무거운 가방을 들고 

비좁은 차에 오르고 그의 어머니는 떠나는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들을 먼 길로 떠나 보내는 엄마는 희잡을 눈가로 들어 올리고 얼굴을 가리다 말다 하였다.

 

날씨처럼 내 마음도 착잡해졌다,

 

누렇게 물들고 있는 나무풀을 양편에 두고 차는 아래로 곤두 박질 치며 내려 왔다.

여전히 설산은 우 뚝 위용을 자랑하였고 비는 간간히 뿌렸다. 

 

 

내가 맨 처음 차를 탔기에 아무도 없었을 때,- 기사에게

 

 

‘ 이차 네가 오너?’

 

 

아니주인이 따로 있어나는 봉급 받고 일해.’

 

 

한국서 왔다니까 악수를 청하였고 좋아라했다.

 

 

 

차가 출발하면서기사의 옆에는 일본 녀나는 창가쪽

장은 맨 뒤쪽 구석 자리

기사는 일본 녀 에게 계속 말을 걸었는데 나는 대충 알라 듣다가 마는둥 하는데

일본녀가 기사 이게 묻는다.

 

 

이 차 네 차야?’

 

기사

물론이지내 차야네가 어제 잣던 그 호텔도 내 것이야.’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좀 전에 나에게 했던 말과는 100% 반대의 말을 하는 기사.

 

 

 

 

 

내가 일본 녀에게 물었다.

밤에 몹시 추웠어너는 춥지 않았어?“

 

 

일본녀

장의 품에 안고 자 하나도 안 추웠어.’

 

 

아주 당당하게 말하는 앳된 얼굴과 자그마한 채구였다.

 

누가 보아도 미성년을 갓 지난 나이  . 21살 이란다,

장의 나이 42살로 알고 있는데.

 

 

한 시간 가량을 내려왔다.

 

 

 

축제 기간이라 차가 거의 없고 상점도 문 닫은 설렁한 알리마바드에 도착하니 

장과 일본 처자는 어데 론가 손살 같이 사라져 버렸고

 허기진 배를 체우느라 토마토와 식빵을 뜯어 먹었다.

 

 

 

마침 스즈끼 하나가 칼리마바드에 간다 하였는데 

오늘 이글리스트에서 하루 자고 갈 계획을 바꾸고 올라탔다.

 

 

 

이글리스트도 산 꼭대기기에 있으니 추울 것이다,

일단 칼리마바드에 숙소를 잡고 몸을 추슬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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