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서 국경 버스 터밀널로 갔다.

  

베이징 시간 10시 30분으로 알고 오니문도 열지 않았고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사람들이 드문 드문 왔으며

이곳 시간 12시 30분에 출발 한다 하였다.

  

표르 구매하고 입국 심사대에 여권을 들이미니 교개를 가우뚱 하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무슨 문제가 있을 라구.

여권을 들고 가더니 오질 않았다.

  

사묵국 직원들은 얼굴에 기름이 반지르르 하였고,

주름이 일자로 잡흰 초록색 바지와 깨끗한 제복에 머리는 단정하게 짧게 깍아 있었고

구두는 반질 반질 하였으며

모두들 상냥한 웃음으로 대해 주었으며 친절 하였다.

  

아무렴 수슨 문제가 있을라구.’

  

모두들 위세는 당당해 보였는데 남자 직원 들 중

유일하게 여자 직원 하나가 구두 소리를 또각 또각 내며 오더니

  

너는 이곳에 30 일 이어야 하는 비자인데 오늘-이일을 추가 하였다.’ 한다.

  

이게 무슨 변고 인가?

  

복수 비자라 여권을 보지도 않고 다녔는데 이런 일이?

  

헨폰의 한 중 사전을 보여주며 복수 비자이다.’

했더니 그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의자에 싯 다운’ 하고 있어라 한다.

  

조마해 졌다.

  

시간은 흐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출국 심사를 끝내가는데 부르질 않는다.

  

서안으로 들어 올 때 복수 비자 받느라 일행들 한꺼번에 비자 낸다고 보낸는데

아마도 30 일짜리 였나 보았다.

  

정확히 8월 15일 서안 들어 왔고,

오늘이 8월 16일 이니 32. 2일을 더 있었던 것이다.

  

어쨋건 나는 이들의 법을 어겼으니 범죄자이다.

  

군 소리 없이 의자에 머리 조아리고 있어려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조바심이 났다.

  

느긋하게 생각하자.

  

아무렴 저들이 나를 잡아 가두지는 않겠지벌금을 내라 할 모양인데.’

  

.....그간 아껴 쓰느라 먹는 것자는 것,

  

절약하며 궁핍한 여행을 하고 있는 자신이 처량하고 불쌍해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들면 얼굴 일곱구멍 아래 동네 두 구멍부터 고장 난다

  

하더니 피곤하거나 긴장스트레스 받으면

소변통이 터 질 것 같은 증상이 있는데 급히 화장실을 다녀 오고 싶었다.

  

직원들 중 아주 성실하게 생긴

(꼭 우리 한국 청년 같은 생김새)에게 ~“ 하니 친절히 데려다 주었다.

  

차 떠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내 여권은 어데로 갔을까?

  

아까 위풍 당당한 여직원은 보이질 않고 심장은 더 두근 거린다.

  

배낭 속에 중국 돈 100위엔 짜리 16 장 남아 있는데

저들에게 벌금으로 다 주어도 모자를까?

  

모자른다면 딸라라도 더 보태 주어야지.

  

만약 그녀가 카스에 19일 온다 했으니 그녀가 올 때 까지 있다가

  

함께 왔더라면 벌금 어마하게 나오니 그래도 이만 이면

다행이이라고 자신에게 위로를 해 주면서

  

상관 한분과 여자남자 직원이 따라 오란다.

  

고개를 푹 숙인 죄인이 되어 복도를 쭐래 쭐래 따라가니 심문실이다

.

컴퓨터에 무비 카메라가 설치 되어 있었고

  

책 상 앞 2m에 있는 의자에 앉으란다.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꼼짝도 말란다.

  

프린트 물을 빼더니 보란다.

  

내가 중국 단어문장 아는게 뭐 있나?

일단 여권 번호국가이름 보니 맞는 것 같아

  

오케이’ 했다

  

그중 영어 잘 하는 안경 쓴깡마르고 아주 성실 싸나운 직원이 말하는데 대답 만 하란다.

묻는 말에 ‘ 오케이로 답하고

  

너는 8월 15일 한국서 시안으로 왔는가?’

  

오케이

  

너는 30 일짜리 중국 비자인데 오늘이 9월 16일 이니, 2일을 불법으로 있었다.’

  

오케이

  

너는 이 서류에 싸인을 할 것 인가?’

  

오케이

  

싸인을 했다.

벌금 내라 소리를 안했다.

높은 분 듯한 남자가 말하길

  

‘3일부터 벌금인데 2일까지는 벌금을 안낸다

  

뭐 이런 말 하는 것 같았다.

  

`를 연발했다.

  

여권에 출국 도장을 받고 버스 타는 곳으로 나오니

  

긴장이 풀린 건지 고산증이 오는 건지 어질 어질 했다.

이젠 여권에 찍흰 국가의 기간을 자세히 살펴야 겠다.

이것은 철저히 나의 잘못이다.

  

버스 문 열기를 기다리는 데

기관 총 든 군인들 5,

아까 출국 심사장 직원들 5명 모두 나와 줄을 다시 서게 하더니 높은 사람 하나가

레이디 퍼스트!’

  

라고 외치니 여자들이 맨 먼저 줄 써는데 여자는 모두 3,

  

남자는 33,

여러번 대가리 숫자를 세고 운전수 둘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고 차에 타게 했다.

  

여자 3명 중 나파키스탄 나이드신 할머니 한분,

중국 여자 한분 이였고

남자들은 중국 남자 두분 외에는 모두 파키스탄 남자였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니 긴장이 사라 진 듯 하였으나

몸의 기운이 빠지고 허기가 닥쳐 왔다.

  

삶아온 감자와 계란을 먹는데 가다가 소변 마려울까봐.

  

물은 아주 조금 먹었다.

지금 이 글을 이렇게 쓰건만 그 날 차 타고 올떄

내 기분은 어질 어질 하였으며 여행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 보게 만들었다.

  

이곳은 여기 저기 설산만년설이 뒤덮여 있으니,

뭐 그리 세롭다는 것은 없으나 마을이 옹기 종기 보였으며

말들이 있었는데 양들은 보이 질 않았다.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40분 가량 온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는 것이다.

학교도 있을까?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니펼쳐지는 풍경에 잠을 쫓아가며 온다.

  

오다가 제2의 검문소에 내리는데 총든 군인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란다.

  

데가리 수 세어 보더니

맞다

라고 중얼 거리는 것 같았고 차는 출발

구름과 설산은 연인처럼 붙어 있었고

9월로 접어든 누르스럼한 초원에 가축들이 거닐고 있었다.

붙어 보이는 구름들은 사실 흐르고 있었는데 연인을 애무 하듯 설산에 붙어 흘러갔다.

  

쿤자랍 패스 (쿤바랍 고개-홍차라포<중국어> 4730m)

내가 이곳을 지나다니!

  

벽돌과 세맨트를 바른 쿤바랍 패스를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기온은 차가왔으며자연의 위용은 한층 더 했다.

  

참으로 자연은 오묘한것!

  

아까 지나온 중국 땅과 다르게 파키스탄 쪽의 산들은 깍아지른 암벽 이였으며

솔직히 중국 만 못하였다(이건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버스안의 모든 사람에게 받지 않는 8불을 한국인 나 혼자

내고 간단하게 출국 심사를 통과하고

  

아주 작은 도시소스트에 도착하니 훈자까지 택시로 데려다 줄테니 30불 내란다.

  

일단 쭈그리고 앉아 흥정을 하는데 깔끔한 베복 입은 사나이 등장.

  

훈자 가니?’

  

칼리마바드카림아바드~~.. 훈자 갑니다.’

  

따라 오란다.

  

이 남자는 30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눈동자머리카락 색깔만 다른 브래드 피트 같은 미남이였다.

  

피트가 등장하여 나를 부르니 좀 전에 흥정하는 택시 가사들

콩 사발 흩어지듯 사라지는데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중국 출입국 사무소서 죄 지은 일이 있기에 배낭을 짊어지고

졸 졸 따라가니 그럴 듯한 건물 앞에서 기다리라 하며 저 차가 가니 너 델 다 준단다.

  

입 꾹 다물고 좀 있자니 차가 다가 왔는데,

  

운전기사 옆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고 아까의 비래드 피트는 뒷 자리에 있었다.

죄 지은 것 없으니 배낭 실고 올라 탔다.

  

이들은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들인데 앞 자리는 관리 사무국 소장-즉 제일 높은 캡틴,

내 옆 자리의 피트도 높은 자리에 있는 듯 해 보였다.

  

차는 보기 드물게 반질 잔질 윤나게 먼지가 없었으며 일본 무슨 차 였다.

  

야들이 뭘 알긴 알 구먼나를 이렇게 대접하며 훈자까지 델다 준다는게

  

사실 나는 나이가 할머니 줄이고 몸은 뚱 뚱 한데다

얼굴에 간신히 로션과 썬 크림만 찍어 발랐으며

머리는 헝클어 질세라 버프로 동여 맸다.

  

이들은 수준은 과히 출입국 관리국 고위직이니 영어를 썩 잘 하였는데

영어 못 하는 나는 그저 알아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한국서 뭣 하냐서울 사냐자녀들은 있냐?’ 두 남자 벌 것 다 물었다.

  

그들의 집은 길깃에 있다 하는데,

출입국 관리 사무국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것이였다.

  

사무국은 소트트에 있었고소스트는 빈약한 도시이므로 출 퇴근 한다 하였다.

  

꽃 치장한 트럭이 지나 갔는데 피트가

너 저 트럭 보라‘ 한다

  

나는 한국의 TV 다큐먼터리서 파키스탄 트럭을 보았다.’하니

피트의 잘 생긴 얼굴에 웃음이 지는데

그 때부터 피트는 더 부드러워 지고 앞 자리의 캡틴도 저 부드러워 졌다.

  

곧이어 파수호를 지나는데 지금은 도로가 뚫리어 훈자까지

 배를 타고 갈 이유가 없게기에 빈 배들만 옥빛의 물위에 둥 둥 떠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도로는 군데 군데 공사중 이였으며

터널 입구에서 큰 공사로 차가 진입을 하지 못했다.

캡틴 나가고 피트 나가더니 좀 있다가 나도 가방 가지고 나오란다

  

공사 중인 곳을 지나가니 다른 차가 대기 중이였는데

그 차를 바꿔 타고 아까 타고 온 차는 돌아가는 것 이였다.

  

다시 타고 가는 차는 이곳의 현장 소장 같은 사람으로 보였으며

캡틴에게 연실 굽신 거렸으며

공사장의 사람들은 캡틴을 향해 겨수 경래를 붙였다.

(훈자에 왔어 들으니 공사중 인도로에서 거의 두세시간 기다리다 온다 하였다)

  

생각 해보니 한국 드라마한류 바람으로 한국 사람이면 좋아하는

그들의 생활을 그날 맘것 보았던 것이다.

  

훈자 마을 입구까지 왔었고돈 한 푼 안 받고 길깃으로

떠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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