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와 훈자를 나왔다

 

미리 훈자를 떠나는 우리를 위해 종원씨와 미스 장은 스즈끼를 

타고 안 보 일때 까지 서 있었다. 

 

칠레에서 온 이 꼬마의 배낭은 내 배낭보다 3배나 컸으며 

배낭 멘 아래에는 멜로디카가 대롱 메달이여 있었다

 

름이 단테라 하니 철학자 단테의 신곡으로 이 녀석이 이름은 좀체 잊혀 질 수가 없다

 

그는 길깃에서 낭가파르로 가서 K2 트레킹을 한다 하였고 

나는 길깃에서 비행기로 이슬라마바드로 가고 자 하였다

 

 

칠레 꼬마 단테 


 

 

 

 

훈자의 아랫동네 알리마바드에서 로컬 차로 2시간.

 

 

길깃은 작은 도시였으며 비행기 표를 끈 고자 공항으로 가면 안 된다.

 

시내의 중심가 알리마바드에서 오다가 왼쪽 편에 비행기 티켓팅을 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다

하지만 5일 후에나 표는 가능 하다 하였다

 

이곳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20시간 걸린다는데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메모장을 꺼내어 단테에게 보여 주었다.

 

 

훈자 하이데르인에 묶고 있을 때, 내 옆 옆방에 길깃의 장사꾼이 두 분 이틀을 계셨다.

 

그들은 아주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보였으며 훈자에 비즈니스 하러 왔다고 하였다.

 

젊은 여행객들은 어디를 돌아 뎅기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별 할 일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점심 준비를 하였고

그들에게 함께 먹자 하였다.

 

 

 

빠짝 마르고 둥그런 빵에 콩야채 등을 다지어 뽁은 것에 향신료

냄새가 지독한 이곳의 음식은 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기에 주방 사용료를 별도로 주고

시장 보아다 내 나름 맛나게 먹곤 하였지만 혼자서 밥 먹기란 정말 싫었다

 

 

숙소의 지킴이 영민(한국사람이 지어준 한국 이름)이와 먹기도 하였고

한국 여행객 종원님미스 장과도 먹었었다.

 

 

 

그 날은 젊은 여행객들은 높은 산으로 트래킹 갔었고

길깃의 두 남자 분이 대 낮에 어슬렁어슬렁 거실을 왔다 갔다 

하기에 함께 먹자 하였더니 좋아라 하시었다.

 

 

 

내 나름 준비 한 식사를 맛있게 먹었으며

영어를 못하니 대충 영한 사전 띄우며 대화를 하였었다

 

그는 길깃에서 유니폼 샾을 한다 하였고 길깃에 오면

작고 초라 하지만 꼭 오라고 수첩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었다.

 

 

 

길깃의 유니폼 가게 주인 알리 


 

 

단테는 파키스탄에서 NGO일을 하였으며

헨드폰이 파키스탄 것인지 파키스탄 전화가 된다 하였다.

 

그는 영어를 속사포처럼 잘하여 이곳 사람들과 대화는 장마철 강물 흘러가듯 빠르게 진행 되었다.

 

 

나는 소심 약간의 걱정은 되었다.

 

만약 길깃 유니폼 장사꾼이 모르는 척 하면 단테 앞에 내 자존심도 깎일 것이고

내가 공짜로 준 점심도 약간은 아까웠다는 것...

 

 

 

하지만 그는 너무나 반갑게 전화를 받았으며 빨리 자기 가게로 오라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네에서 말하자면 상가 같은 곳.

 

여러개의 가게들이 붙어 있는 중, 구석 자리에 위치한 그는 교복경찰복은행 직원복등 맞춤,

주문 제작 하는 가게 였다.

 

이건 순전히 남는 장사다

 

 

 

이곳의 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데 지정 맞춤 교복 가게는 한 철 장사 이지만 독점하며

돈 버는 것이다.

 

 

 

 

그의 가게에 들리기전 콩 기름 대 병 하나 340루피에 싸들고 갔다

 

아직 이른 오후라 가게에서 짜이를 마셨고 주위의 가게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쳐 나와 우리들을 향해 뭐라고 떠들었으며 

단테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곳 사람들은 칠레를 잘 모르니 단네는 칠레에서 왔다 할 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싸우스 아메리카.’

혹은

아르헨티나 옆 브라질 옆 칠래.’

 

 

 

유니폼 가게 주인 이미티자 알리의 사촌 동생이 

반지러한 우리네 아반데 같은 차를 가지고 나타 났는데

그는 이곳 길깃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알리마바드에 전하는 기자 였다

 

아직 알리의 가게 문들 닫으려면 해가 중천에 떠 있었기에 

알리는 자기 엄니 집 즉큰 형 집에 다녀오란다

 

알리의 사촌은 길깃의 시내를 한 바퀴 돌아 구경 시켜주고는 그의 큰 집으로 향 했다

부촌 같은 곳이 였는데 파키스탄 와서 처음 보는 집들이 크고 좋았다.

 

 

 

알리의 큰 형집-이곳에서 어머니도 살고 계심

 

 

 

집 안의 정원에 초록의 잔디가 주단처럼 깔려 있었고 ,

장미해바라기붓꽃과 담쟁이 넝쿨이 담을 타고 있었다

알리의 중간 딸엄니등 모든 식구들이 우르르 나와 우리를 반기었다.

이내 정원 테이블에 짜이를 가득 담은 잔비스켓 까지 내 오셨다.

 

대 가족이 였다

 

사촌삼촌, 조카등 소개 하는데 16명은 넘어 보였다

 

어쨌든 부자인 것 같은 이들을 보내 마음이 흡족하고 가슴이 풍부해져 배까지 부풀어 올랐다.

 

 

 

어둠은 길깃 시내에 깔리기 시작 했고

경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면서 지나 갔다.

 

공포의 분위기를 부르는 앞 두차는 싸이렌이 달린 지프차

뒷 차는 군용 트럭 이였는데,  뒤 짐칸을 천막으로

가리어져 있었고 중간에만 구멍이 뚫리어 기관총을 든 세 명의 군인이

삼각형을 만들어 서 있었다.

알리가 말하길

 

텔레반들이 언제 테러를 가할지 몰라서 군인들이 순찰을 돈다’ 는 것이다.

 

사실 시내의 곳곳에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서성데고 

더러는 왔다 갔다 하였다. 


 

 

알리의 가게에서 걸어서 15뿐 정도의 집을 굳이 사촌 차로  향했다.

 

 

 

알리의 자녀들은 4 3

집안은 왁자지껄 했으며 자녀들이 우르르 나와 반기었다.

그중 딸 하나는 아까 다녀 왔던 큰 집에 있었지

 

단테는 그들와 속사포의 영어를 주고 받았고 좀 있으니

알리 큰 형의 큰 아들이 두 자녀를 데리고 왔다.

알리의 방에는 큰 침대 2개가 붙어 있었고 넓은 홀 이였다

 

밤이 깊어 갔으므로 나는 심히 배가 고팠다

 

파키스탄식 식사넓적하게 구운 빵

고기 야채 카레를 넣고 압력 솥에 푹 푹 삶은 쏘스를 함께 맛있게 먹었다.

배가 고팠으니 이젠 파키스탄 음식도 맛나게 술술 들어 갔다

 

 

 

 

알리의 식구들과 둘쨋 딸 

 

알리의 방 벽 사각을 마주해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큰 딸이 작년에 그렸단다

알리는 앨범을 꺼내와 보여 주었고 그

들 부부가 카라치(남부 해안 도시놀려 다녀온 사진

큰 엄마작은 엄마고모이모엄마의 언니동생고모의 오빠 언니 동생사촌

 

큰 아버지작은 아버지큰 아버지 부인의 언니동생 등등 그러니까 그들 집성촌

한 면을 앨범을 통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알리의 앨범 중 

 

 

 

저녁을 맛나게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알리와 사촌은 숙소의 방까지 따라왔는데 

단테는 속사포 영어로 그들과 대화를 하였다.

 

주로 단테의 이동선인 낭가파르-K2 등반길을 묻는 것 같았다.

 

 

 

훈자의 칼리마바드 숙소 칼리마바드 인에서 한국 책을 발견 하였다,

한국에서 누군가 드문 드문 책을 보내 준다 하였다.

 

 

 

오기전 날 종원씨미스장(이들은 훈자서 10월을 보내고 11월에나 나온다고 했다)

단테일본 남2명과 닭 두 마리바이주 2병을 먹고

흐릿한 눈으로도 책 장을 발견 했으며,

우리네 책을 보는 순간 두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종원님에게 꼭 보라고 주면서

-손 코네리가 주연한 영화가 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를 모방한 영화라.- 이야기 해 주었다.

 

 

 

또 한권의 책은 거의 낡아 너덜 거렸는데

 

!

 

 

 

내가 처녀적 날 밤을 세며 단숨에 읽었었고,

 40대 중반에 다시 읽었는데 처녀적 읽었던 감동의 몇 갑절은 더 하여

 50 대에 또 다시 읽으면 어떤 감동일까하면서 아껴 둔 책

폭풍의 언덕 이였다.

 

 

 

알리알리의 사촌단테가 떠들건 말건 어차피 영어를 못하니

그들의 대화에 끼워 들지는 못하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책 읽기에 몰두 했다.

 

 

 

한참을 대화 하던 그들은 간다기에

 

내일 아침 6시에 이슬라마바드 가는 버스 터미널로 갈 거다.’

 

 

 

했더니 그때는 문도 열지 않았으며 8시에 가면 차들이 있다 하였다.

 

 

그들은 가면서 아침에 다시 온다 하였고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 했는데

저 어린 꼬마 단테가 이불에서 두 눈을 내 놓고 차마 불 끄라 소리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불 끄주마.

 

이른 아침이면 으래 잠에서 깬다.

 

 

술에 만당이 되었어도 

새벽이면 일어났고 아프거나 전날 무진장 일을 하였어도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다.

 

 

 

돈 많은 재벌들의 자서전이나 그들의 일상은 언제나 이른 아침에 시작 된다.

 

나는 비록 돈은 없지만 이른 아침의 그 청명하고 깨끗함이 좋다.

 

 

 

아침 10시면 아침의 좋은 시간은 지난다

10시까지 하루 일의 반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나머지 반도 못하기 일쑤지요

-폭풍의 언덕 넬리의 대사 중

 

 

 

단테는 아직 20살 초반이니 아침 잠이 당연히 많겠지만,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가방 싸고 별 짓 다하고 있으니 단테가 몇 시냐고 물어오길

 

 

 

너 어디 가니?’

 

우리 좀 있다 버스 터미널 가야지.’

 

 

 

아마도 잠을 깨운 나를 탓 한 것 같았다.

 

 

 

짐을 싸들고 아래 층 카운터로 내려오니 

주인장 따뜻한 짜이를 내 놓았는데 냉면 사발 만큼 많이 타 왔다.

 

너 직업이 뭐니?’

 

 

 

아랑 드롱 같이 생긴  미남 주인장이 물었다.

 

 

애브리 바디 플레이.’ (나 매일 먹고 놀아.)

 

 

 

그럼 돈은 어데서 생기어 여행 다니니?’

 

우리 아들이 3D 프로그래머엔지니어야아들이 돈이 많아먹고 놀 으래

 

 

 

돌아 뎅기다 보면

너 직업이 뭐냐고?’ 

묻는데 나는 뻥을 친다.

 

 

 

주인장에게 아까 한 말은 농담이고 

내 진짜 직업은 한국의 메거진에 여행기 글을 연재 한다 하였다.

 

 

 

금방 태도가 달라진다

 

이 수법을 훈자 힐탑 호텔 사장에게도 써 먹었고 라호르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써 먹었다.

 

 

 

이 수법은 그들의 서비스가 금방 달라 지면서

우리 숙소와 음식점 그 잡지에 꼭 실어 달라.’ 한다

 

 

 

그러면 나는 이미 사진을 찍었고 꼭 실어 주겠다고 뻥 쳤다.

 

 

 

내가 이들의 숙소 정문과 뜰 사진을 찍는 것은 어쩌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이 숙소를 못 찿을 까봐  찍어 두는 것인데.

 

 

 

훈자의 힐탑 호텔 사장은 내가 메거진에 여행기를 쓴다니까 

'호텔의 2층 식당에서 한국 음식 맛나게 대접 해 주겠다,' 하였다.

 

 

 

그 날은 종원씨미스 장단테 일본 청년 하나와 이미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안 된다 하였더니 

'그럼 내일은?'

 '내일은 나 길깃가.'

 

 

 

그리곤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호텔 살려면 얼마요?‘ 물으니

일억 이라는 것인지 십억 이라는 것인지 돈 계산 잘 못하니 나는 알 수가 없었고 

힐탑은 훈자 중 고급 숙소라 돈 꽤나 있는 파키스탄인들도 단체로 오고 

음식 값짜이커피 값도 비샀다.

 

 

 

사장님 돈 많이 버시지요?’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었다

10월 중순부터는 관광객이 없고 

11 12 1.2.3.4. 월까지는 문을 닫는단다. 눈이 내리고 쿤자랍 패스가 닫흰다.

 

훈자의 큰 숙소들은 가을 후반부터 늦은 봄 까지 문을 닫는다

 

열어 보았자 직원들 봉급도 안 나온단다

그는 몸가짐과 옷차림 수염 머리 그러니까 머리부터 구두 까지 단정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였다.

 

1층 거실에 짜이를 마시고 있는데 떠나는 우리를 마중하러 알리가 왔다.

 

 

 

 

가운데 하얀 설산이 낭가파르 들어가는 길이고 그 뒤에 K2 가 있답니다. 


잡지에 글 쓰는 한국 아줌마와 

칠래 꼬마 청년 단테를 테우고 버스 터미널로 고!

 

 

 

왼편의 산들 사이로 설산들이 칼날이 춤추 듯 정교하게 써 있는데

알리가 저 산들이 낭가파르고 그  넘어가 K2라 하였다.

 

산들은 한 점 티 없는 눈들을 이고 지고 위용을 자랑 하였고 더 없이 맑아 보였다.

 

 

 

이곳을 떠나면 어젠 다시 올 수 있을까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던 알리와 그의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슬퍼졌다

 

옆 자리의 단테는 계속 그들과 대화를 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더욱 착잡해 져 갔다.

 

터미널은 복잡 했으며 알리와 숙소 사장은 부지런히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았다.

 

로컬 버스와 대절 택시가 있는데 로컬은 1,700루피대절 택시는 5,000 루피 라 하였다.

 

 

 

로컬 도착 시간은 오전 5시경이지만 택시는 오전 2~3시이니

 가서 기다리기 힘드니 로컬을 타고 가란다.

 

 

 

'OK'

 

숙소에서 차까지 태워다 준 숙소 사장과 알리에게 미안한 마음에 돈은 주기

그렇고 가게에 들러 빵(카스테라 같은 빵)을 쌌다.

 

알리의 7자녀와 숙소 사장의 직원들 몫이니 넉넉하게 쌌고 단테 것은 한개 쌌다.

 

 

 

빵을 사 들고 오는데 차가 출발 한다고 빵빵 울려 댔다.

 

 

 

빵을 그들의 손에 들려주면서 그만 엉 엉 울었다.

 

 

 

무슨 초상 난 것도 아니고 세남자를 붙들고 엉엉 울어 제키니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으며 차안의 사람들은 얼굴들을 내 밀었다.

 

 

 

단테는 당황하였고 알리와 숙소 주인은 우는 나를 달래느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알리는 이 담에 파키스탄 오면 꼭 자기 집에 와야 한다고 말 하는 것 같았다

 

 

 

슬펐다

 

 

여긴 중국과 인도의 국경에서 한참을 들어온 길깃이라는 작은 도시지만 

나는 파키스탄을 떠나 인도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짧은 시간이나마 알리의 집에서 그의 가족들과 놀았던 일,

훈자에서 단테와의 저녁이면 악기를 함께 부를던 일,

 

훈자 사람들의 느릿하고 온화한 미소등 언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내 차는 산으로 칫 닿고 내 마음도 산 길 속으로 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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