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월) 에 이곳에 왔고 오늘이 9월 13일 이니 오늘 자면 7일째이다.

어제 저녁 무렵에는 답답증이 도지어 거실에 나와 가슴을 쳐댔다.

주위의 젊은 여행객들이 왜 그려냐? 는 표정을 짓기에 한중 사전을 찿아

'答'을 보여 주며 가슴을 쳐대 보아도  별 표정들이 없었고
헉 헉 거리다 

머스매 하나 델고 시내로 나갔다.

[치니와커 삔관]- (영국 영사관 이였다는 조지 메카트니가 대사로 부임하였다는)
이곳에 가 보고 싶었던 것은 -비틀즈 맴버의 조지 메카트니타 라는 이름으로서 인데
비틀즈의 조지 메카트니와 이곳에 영사관으로 일했던 
조지 메카트니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매일 숙소의 주방에서 밥 먹다가 '존스 카페'에 들리어
색 다른 무언가 먹어 보고자 하였지만
돈반 비싸고 그저 러했다

밤이면 인민광장에서 인민들의 춤 사위가 있다기에 
춤 꾼들은 없었고 공각 기동대를 연상시키는 탱크 장갑차 기관총 가슴에 품은
 군인들  순찰차  12대등
살벌했다


할일 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 오해 라도 받을까 공원안 으로 
들어가 보니 

 롤러 스케이트장과 베드민트장에서 운동하는 
인민들
 지나쳐 놀이 공원을 빠져 나와
숙소로 왔다.

자고나니 
아침에 우리네 젊은 청년 한분이 한족 아가씨와 들어 오는데
반가움이란!

청두성을 거쳐 비행기로 우루무치 와서 기차로 오늘 아침 이곳에 왔단다.
그 젊은이 이름은 '준'

반가워라! 생기길 장동건 보다 더 하고 키도 헌출한게
 그가 
이곳에 들어서니 꽤재재한 이곳이 
수십개의 등불을 밝흰것 보다 훤해 졌다.

일요일의 가축 시장은 버스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이곳서 택시비 50 위엔쯤
 준과 준과 함께온 한족 아가씨와 우리방 공주와 일요 시장으로
그녀들은 흥정의 도사들인지,

갈때 30 위안 올때 30 위안
개인당 왕복 15위안에
한낮의 땡볕은 따갑고
일요 가축 장터는 먼지가 풀 풀 날리 였으며 

소, 양- 주로 양
온갖 생김새의 양들을 팔고 사는 사람들

간혹 유럽 여행객들, 중국 본토 여행객들의 사진찍기.





시내와 떨어져 있는 일요 가축 시장 

큰 가마 솥에는 양고기를 푹 푹 삶고
손 을로 쳐서 뽑아내는 국수

냉음료 사람들의 함성

큰 트럭, 경운기 같은 차, 택시, 자가용, 미니버스들
간혹 골동품 악세사리를 파는데 상품의 가치가 꽤 있었다

가축시장에서 악세사리와 골동품을 팔고 있었는데 
갖고 싶은 물건 몇가지를 쳐다보며  아쉬운 발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일요 가축 시장 안에서 파는 악세사리, 골동품

 숙소로 돌아 와 막 이층으로 향하는데

쿠처-호탄의 버스에서 11시간 가량을 함께 하였던 70 대 항주 한족 부부가 내려오고 계셨다

 이틀 전 강 건너 대 바자르의 골몰 안의 골동품가게에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 날 내가 이곳 숙소 명함을 주었더니 찿아 온신 것이다.

이층으로 올라와 이러구 저러구 앞 뒤 안 맞는 말 이어가고
'저는 낼  카수쿠르간  가느 대형 버스  타고(로컬 버스) 카라쿨호수 에서 내려 하루 자고
그 다음날 카슈쿠르간 가서 소스트 갑니다

70 대 한족 부부- 저 강건너 빈관에서 계신단다.
'우린 낼 5명이 일 인당 300 위엔에 일 박 이일 하러 카라쿨 가는데 같이 갈래?'

'전 그냥 대형버스 타고 갑니다'

'근데 파키스탄 비자 있냐?;
'있어요'
그들도 파키스탄 가고 싶어 하였는데 비자가 없단다.
아마도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았다.

오후에 할일 없이 있다가 우리네 젊은이 장동건이 한테
시내 구경 가자 하니 할일 만아 안간단다.
좀 있다 우리방 공주가 짙은 화장 하고 야시시한 드레스 입고
우리네 젊은 청년 준 = 장동건이 한테 차마시러 가자 하니 
장동건 얼른 따라 나간다.

이러니
늙으면 어째야 된다나.

 우리 젊은 청년 준은(장동건 같이 잘생긴 )
일행이 오면 
4일 후에 파키스탄 온다 하니

 난
무조건 낼 떠나리라.

가다가 죽기라도 하겠는가?

내 한 몸 부서져 하늘로 간들
자연의 경관에 소스라치며
눈물지으며
스쳐가는 사람들의 연민에
바람같이 물 같이 흘러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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